한국정치에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a.k.a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양대세력에 모두 반감을 갖고 있는 소위 제3세력이 일정비율로 존재한다. 이 세력의 역사는 매우 뿌리깊어서, 대통령선거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정주영+박찬종(1992년), 이인제(1997년), 정몽준(2002년), 이회창+문국현(2007년), 안철수(2012년) 등의 인물들이 명멸해 갔고, 매번 20% 전후의 유의미한 지지율을 얻곤했다. 1등만 당선되는 대선 특성상 사표방지심리로 인해 결국 1위 아니면 2위 후보에게 표가 쏠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생각보다 뿌리깊은 지지층을 갖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과소대표되는 그룹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중도'라 불리는 이 제3지대에 깃발을 꼽으려는 사람과 세력은 항상 있어왔지만 제도적 한계와 개인 또는 세력의 역량 부족으로 인해 장기간 지속되진 못했고, 대신 보수나 진보 쪽에서 이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집권의 발판으로 삼은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선거를 1년 앞둔 현 시점에서 이들은 조국 게이트로 대표되는 문재인 정부 집권세력의 무능과 불공정에 질려 있으면서도, 그 대항마로 이명박근혜와 태극기 부대가 돌아오는 것을 더 두려워 한다. 즉 민주당은 싫지만, 국민의힘은 차마 찍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 촛불집회 이후 3번의 전국단위 선거에서 자유한국 미래통합당은 연전연패 중이며, 국민의힘으로 이름을 바꾸고서도 아직 이렇다할 대권주자를 찾지 못한 채 지리멸렬한 상황이다.
바로 그 지점에 윤석열의 상품성이 있다. 문재인은 싫지만 박근혜는 두려운 사람들. 조민과 정유라에 모두 분노하며, 진영논리를 벗어나 상식적인 차원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대권주자 윤석열은 분명 매력적인 카드이다. 그는 지난 1년반동안 문재인과 가장 선명하게 대립각을 세우며 반 문재인정서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음에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에 대해서 단호하게 철퇴를 휘둘렀고 원세훈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에선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압박을 견디며 강도높은 수사를 진행하다가 치명적인 불이익을 받았다는 점에서 BOSU의 원죄로부터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레임덕이 심해지는 정권말이 되면 공직기강이 해이해지며 LH게이트 등 부패문제가 민심을 파고들거라는 점에서 반 부패의 상징 같은 그의 존재는 더욱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보수 또는 반 문재인 진영에 이렇다할 대항마가 없으며, 김종필 - 이회창 - 이인제 - 반기문 - 안희정으로 이어지는 충청대망론의 후계자로 거론된다는 점도 대권 가도에 청신호를 밝혀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장점들은 곧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그가 대권에 직행하려면 중도층만으로는 어렵고 보수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박근혜 이명박은 물론 이재용까지 구속했던 원죄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그 외에도 27년 검사생활 동안 그가 구속, 기소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WONHAN 또한 극복해야 할 터.
또한 차기 대선과 관련해 분명 중요한 이슈가 될 민생경제와 관련, 역량을 검증받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점도 지적될 것이다. 법조인들은 대체로 경제 문제에 무지하고, 그 중에서도 검사들은 모든 사안을 법과 처벌의 잣대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윤석열 또한 그러하다면 대통령이 된다해도 경제 문제와 관련해선 문재인 시즌 2에 그치게 될 터.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도, 검사 출신이라 경제를 잘 모를거라는 사람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지난날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이 제기될 당시 해당 결정을 주도한 변양호 재정경제부 국장을 구속기소했으나 무죄판결이 난 뒤, 공직사회에 책임질만한 결정을 피하려는 소위 '변양호 신드롬'이 불거졌다는 점은 경제 문제에 대한 관점은 물론 공무원을 총괄해야 할 대통령으로서의 리더십에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지점이다.
처가나 윤대진 검사 등 주변사람과 관련된 여러 의혹들은 대선 과정에서 어느 정도 검증되긴 하겠지만, 그 이전에도 결정적인 한 방은 없었다는 점에서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외려 한동훈 검사장처럼 검찰에 남아 있는 그의 측근들이 부당한 탄압을 받는다면 윤석열의 정계진출 명분을 강화시켜 주는 결과가 될지도. 슬하에 자녀가 없다는 점도 잠재적 리스크를 줄여주는 부분으로 보인다.
그러나, 뼛속까지 검사이자 걸어다니는 검찰조직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윤석열이 직접 플레이어가 되어 정치에 뛰어들고 대권에 도전하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부분이다.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 진영논리에선 벗어났다 해도 검찰조직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자칫 지난날 검찰 또는 검사 출신 인사들의 과오들을 오롯이 정치적 부채로 떠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그의 명언도 뒤집어 말하면 '(검찰)조직에는 충성한다'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울러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이 윤석열 띄우기에 나선 것도 생각해 볼 지점이다.
한국정치에서 검찰과 보수언론은 (과소대표되는 중도를 대신하여) 보수와 진보에 대항하는 제3, 4세력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2016년 이전 양자는 주로 보수에 조력하며 킹메이커 역할을 해왔지만, 소위 최순실 게이트로 불려지는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며 박근혜 정부를 손절했고 그 결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는 걸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코드가 맞지 않았던 그들은 조국 사태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맞서게 되었고, 그 선두에 서 있던 윤석열이 상징적인 존재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중도 성향 시민들의 반 문재인 여론이 높아질수록 중도+검찰+언론 연합은 견고해질 것이며 윤석열의 대권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어쩌면 윤석열은, 지난날 킹메이커였던 검찰과 언론이 본격적으로 플레이어가 되어 직접 권력을 잡기위한 기획상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배경에는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기성정치권에 대한 혐오와 불신이 깔려 있는듯 싶고.
비슷하게 출발했던 여태까지의 제3후보 대부분이 기성정치권에 흡수되거나, 세력부족을 절감하며 장외로 밀려난걸 봤을때 윤석열이 기성정치권과의 권력투쟁에서 끝내 살아남아 권력을 거머쥘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미지수이다.
그러나 9수끝에 사시에 합격하거나 늦깎이로 임관한데다 권력에 밉보여 후배들보다 한직을 전전하면서도 끝내 옷을 벗지 않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생각보다 권력의지가 강하고,
권력자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소신을 지켜냈다는 대중들이 환호할만한 영웅서사가 있으며,
검찰총장이 된 이후 내놓은 메시지나 퍼포먼스를 보면 정무적으로 잘 훈련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윤석열은 앞으로 대선까지 남은 1년동안 한국정치의 핵심인물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의 정치력을 검증할 첫번째 시험대는 국민의힘과의 밀당을 통해 어떻게 중도와 보수를 화학적으로 결합시킬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