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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권력은 어디까지인가?

정치적인 영역에서의 근대화란, 엄청난 권력을 갖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봉건적 국가로부터,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 점점 확대되며 시민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국가의 권력은 갈수록 잘게 쪼개지고, 상호 대등한 기관들 사이의 견제를 통해 제약되거나, 일정부분은 시장이나 시민사회로 위임되어 왔다.

다만 IT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해지며 '빅 브라더'의 사생활 침해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 되었고, 그 와중에 국가는 법적 윤리적 제약의 빈틈을 노리며 끊임없이 권한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박근혜 정권 시기 통과된 소위 '테러방지법'이었고, 당시 필리버스터까지 동원해 법안 추진에 반대하던 민주당은 막상 여당이 된 이후에도 이 법을 폐지하거나 개정하지 않은 채 3년을 보냈다. 즉 여야,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공통된 권력의 속성이란 이야기.

올해 들어선 미증유의 코로나 19 창궐로 인해, '방역'을 명분으로 한 국가의 개입이 정당화되는 건 물론 광범위한 지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중 영장 없는 집합금지명령 등 지방정부 차원의 조치를 주도하는 것은 서울시장 박원순과 경기지사 이재명인데, 둘 다 인권변호사 경력을 발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는 것이 아이러니.

확진자 동선공개나 접촉자에 대한 자가격리, QR코드를 통한 위치추적 등 조치 또한 꺼림직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건강 보호라는 명분 앞에선 어떠한 반론도 제기할 수가 없다.

나아가 불특정 다수가 모인 공간에 우연히 지나쳤을 뿐인 사람조차 일일이 찾아내어 확진 여부를 확인하는 국가의 능력에는 소름이 돋다 못해 머리카락이 쭈뼛설 정도이다. 수사권이 없는 일반 행정기관조차, 마음만 먹으면 '나'를 감시하거나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우려할만한 흐름은 랜선이라 불리는 사이버 공간에도 존재하고 있다. 소위 'N번방 사건'을 위시한 온라인 성범죄를 예방하겠다는 명분으로, IP, 패킷, 로그기록 등 정보통신상의 흔적들까지 들여다 보고 추적할 수 있는 권한이 시나브로 국가에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의 권력 강화에는, 특정한 이슈와 관련 국민들이 함께 분노하고 돌을 던질 수 있는 공공의 적, '빌런'이 동원되게 마련이다. 그 빌런은 적국이나 과거사 문제가 있는 이웃나라일 수도 있고, 적폐로 몰린 옛날의 권력자일 수도 있으며, 범죄자 또는 일탈을 저지른 개인일 수도 있다. 이들에 대한 분노를 에너지 삼아 국가는 명분을 얻고 권력을 쌓아가게 된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 19와 N번방 사건은 국가의 권력을 강화하는데 훌륭한 계기가 된 셈이다.

국가의 권력을 잠시나마 피할 수 있는 대안(?)이었던 외국으로의 출국마저 막혀버렸으니 이제는 그야말로 도망갈곳이 없어졌다고나 할까.

이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예전엔 비교적 자유로웠던 관광목적의 해외여행조차 방역 강화와 비자 발급 규제, 소재지/연락처 등록과 위치 추적 등으로 해당국 정부의 규제를 받게 될테니 어쩌면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이란 강력한 국가와 억압된 개인으로 상징되는 '멋진 신세계'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