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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뚝심송 님을 추모하며(2018년 5월 15일)

만나서 인사하거나 대화를 나눈적은 없지만 친숙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보통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정치인 같은 셀렙들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온라인에서 만난 벗들도 그런 것 같다. 글과 행간을 통해 그 사람의 생각과 인품이 내게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인연은 커녕 온라인에서 말 한 마디 섞어본 적조차 없는 그가 가까운 이웃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글을 남겼던 그는 명실상부 이 바닥의 셀렙이었으니까. 딴지일보 정치부장, XSFM 상임고문, 이승의견가, 그 밖의 수많은 수식어들이 있었지만 그는 '물뚝심송' 단 네 글자만으로 찬란했던 우리 시대의 논객이었다.

언제부터 그의 글을 읽기 시작했고 그의 필명을 알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나꼼수 열풍 이후 딴지일보를 들락거리며 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2012년 무렵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나라당과 이명박근혜 OUT만을 외치면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내던 시절 그나마 진지하고 이성적으로 정치 현안을 분석해왔던 그의 글은 나름대로 정덕이었던 나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무엇보다 내로남불 식의 진영논리로 애써 외면하던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던 용기와, 허황된 장밋빛 예측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현실을 볼 줄 알았던 합리적인 면모는 웬만한 글쟁이들로서도 쉽게 갖기 어려운 덕목이다. 그리고 그의 그런 모습이 있었기에 박근혜 집권 후 일련의 멘붕 사건들 속에서도 다시금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들 이렇다할 의견을 내지 못하던 어두웠던 시절 그의 논평들이 주었던 위안과 희망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소위 주류에 속하는 언론이나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그가 활동하던 매체나 플랫폼 탓에 저평가 받기 일쑤였고, 인터넷 세상에서는 다소 진지하고 무거운 느낌이라 외면받는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항상 치열한 고민, 균형잡힌 시선,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았던 것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한편 그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실험과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은 이상적인 게 아닐까 싶었던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들, 그리고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제작할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 내지 수익모델에 대한 고민들은 그의 발제를 계기로 미흡하나마 싹을 틔워가고 있다. 언젠가 위와 같은 이야기들이 구체적인 현실로 자리잡게 된다면, 역사책 어딘가에 물뚝심송 박성호의 이름도 반드시 기록해두어야 할 것이다.

늘 인터넷 어딘가에서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었기에 이제는 그 곳에 그가 없다는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알았더라면, 그의 글을 조금 더 관심있게 읽고, 그의 목소리를 조금 더 귀 기울여 듣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조금이라도 인연을, 그리고 추억을 만들었을텐데. 늘 마음만 앞설 뿐 행동은 하지 못하는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이런저런 기회들을 놓치고 장례식장에서나 처음으로 대면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 서운함을 어찌 달래야 하는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그 중 일부는 그 분의 덕일지도 모른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과 사연을 담아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돌아서는데, 아직도 마음이 먹먹하다.

물뚝심송 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많이 그리울 겁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