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검찰개혁'이라는 네 글자는 너무나 지당해서 '남북통일'이나 '민주주의'처럼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정언명령처럼 보인다. 검찰개혁에 대해 여론조사를 한다면, 가령 윤석열 검찰총장이나 검찰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다해도, 검찰개혁을 희망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을 것이다. 아니 과연 반대한다는 입장이 단 몇 %라도 나올지 의문이다(이 글을 쓰고 있는 2019년 9월 29일 일요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개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디테일인데, 우리 모두가 희망하는 '검찰개혁'의 구체적인 목표, 즉 '개혁된 검찰'의 청사진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앞서 검찰개혁을 희망한다는 사람들에게 어떤 검찰을 희망하느냐고 묻는다면, 대체로 '약자에겐 친절하고 강자에겐 엄격하게 대하며, 적법절차를 지켜 인권을 보호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되 신속 공정 정확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여 불의를 반드시 처벌하는' 검찰을 희망한다는 의견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이건 마치 '내구성은 튼튼하고 디자인은 트렌디하며 가격은 저렴한' 상품을 원한다는 것과 비슷하게, 좋다는 것은 다 갖다 붙여놓은 거라서 한꺼번에 전부를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똑같은 검찰개혁이라는 네 글자를 놓고도 서로 다른 검찰의 모습을 그릴 수밖에 없다.
가령 누군가에게는 수사는 경찰에 넘겨주고 기소만 전담하는 검찰이 바람직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직접 수사를 통해 거악과 불의에 맞서는 검찰을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그것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피의자에게 엄격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약자에게 친절하고 강자에게 엄격하라는 것도 구체적인 사건을 살펴보면 누가 약자이고 누가 강자인지를 따지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다. 가령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강자이겠지만, 박근혜 정권 시기의 최순실 앞에서는 그 또한 약자였을 것이다. 160cm에 50kg 정도라는 고유정 씨는, 180cm에 80kg 정도였다는 전 남편을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다.
2.
문재인 정부와 조국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맞닥뜨린 딜레마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적폐세력을 단죄하고 청산할 때에는 한없이 믿음직하던 검찰이었기에 힘을 실어 주었지만, 그 힘을 자신들에게 돌릴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 수구 보수와 토착 왜구, 조중동과 자한당, 적폐세력들 앞에서 우린 아직 약하기 그지 없는데. 우리 편인줄 알았던 윤석열이 살아있는 권력(?)인 자유한국당이 관련된 채용비리며 패스트트랙 사건들은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별 것도 아닌 표창장 위조 사건을 크게 키워 오버하다니.
그런데 사실 검찰은 원래 그런 족속이다. 노무현 정부 이래 검찰은 정치권력에 종속되었다기 보다는 하나의 정치적 주체로서 독자적인 판단에 따른 정치적 선택을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이명박 정부 시기엔 정권과 검찰의 이해관계가 대체로 일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권 말기엔 이상득을 구속하는 등 레임덕을 부추기거나 여야가 합의한 중수부 폐지에 저항하여 검란을 일으키는 등 독자노선을 걷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 초기에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두고 채동욱, 윤석열 등 일단의 검사들이 청와대와 갈등을 빚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조직이 위기에 처하면 집단적인 반발을 통해 총장도 쫓아내 버리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이 검찰총장이 되었을 때, 오늘과 같이 정치권력과 충돌할 거라는 건 예상된 일이었다. 다만 그 시기가 예상보다 좀 빨리 왔을 뿐...
그는 권력자 개인에겐 충성하지 않지만 검찰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누구보다 강하다. 늦깎이로 입사한 검찰에서 서울법대 후배들보다 뒤쳐져 가면서도, 박근혜 정부 시절 한직을 전전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끝끝내 사표를 내지 않았던 사람이다. 한때 대형로펌 생활을 한적도 있지만, 검찰청 복도에서 풍겨나오는 짜장면 냄새가 너무 그리워 검찰에 복귀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리고 이미 검찰 자체가 독자적인 정치 세력이 되어 버린 이상,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따지는 진영논리로도 접근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앞서도 보았듯, 이제 검찰은 자신들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여야 모두를 들이받을 수 있는 힘이 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쁜 검사를 쫓아내고 착한 검사를 등용하는 식으로 사람을 바꿔 검찰을 개혁한다는 건 한계가 명백하다. 문제의 본질은 검사 개개인이 아닌, 검찰에게 부여된 제도적 권한이기 때문이다. 만일 윤석열의 목을 친다해도, 제2 제3의 윤석열이 나타나 정치권력을 물어뜯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정치에 대한 불신 풍조를 감안할 때 '정치권력에 맞서다 순교한 강직한 검사'라는 이미지는 정치적으로 든든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벌써부터 윤석열 대망론이 거론되고 있다.
(문재인의 조국 수사에 대한 메시지는 실질적으로 윤석열에 대한 사퇴권고였다. 강기정 등 BH 정무라인이 물밑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으니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불신임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하지만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을 임명된지 두 달만에 아웃시킬 방법도 없고, 설령 아웃시킨다 해도 자칫 역풍이 불면 정말로 윤석열을 대권주자로 만들어 줄 수 있으니 여당도 고민이 클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채동욱을 쫓아낸 것처럼 비정상적인 방법을 쓰지 않는 이상, 규탄집회를 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3.
아마도 조국은 전국 검찰청을 돌며 일선의 평검사와 검찰 직원들을 만나 직접 소통을 시도하는 등의 방법으로, 기득권 귀족 검사 vs 개혁적 젊은 검사의 대립구도를 만들어 후자 쪽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검찰개혁이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젊은 검사들은 조국과 문재인의 편일까? 검찰이라는 강력한 조직의 일원이자,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사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직한 사람들이, 조국이나 문재인이 이야기하는 검찰개혁에 동의할 수 있을까?('이쯤되면 막 나가자는 거지요?'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명언이, '평'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여태껏 많은 검사들이 검찰을 비판해 왔지만, 그들의 비판마저도 대개는 조직논리에 기반한 것이었다. 무려 다섯 기수를 뛰어넘은 파격적인 발탁과 뒤이은 대대적인 승진인사로 그 자리에 올라선 사람들조차 '개혁세력에 흠집을 내는 방식'으로 개혁에 저항하고 있지 않은가? 언론 지상에 오르내렸던 수많은 검사들 중 검찰 조직 논리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검사는 임은정 하나였던 것 같은데, 그의 입장마저도 이제는 정치적으로 해석되며 내부의 반발을 사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조직 논리에 반하는 개혁이 내부의 공감대를 얻기는 더욱 어려워진 듯 하다.
내부적인 동력에 기반한 검찰개혁이 어렵다면, 검찰개혁을 바라는 시민사회의 여론을 바탕으로 국회의 입법이나 행정부의 하위법령 제개정을 통해 개혁을 추진해 볼 수 있다. 어제(2019년 9월 28일 토요일) 서초동에서 열린 소위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의 참가자 수가 관심을 모으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머릿수가 5만이었느냐 200만이었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바라는 검찰개혁의 구체적인 모습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수단이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논의는 온데간데 없이 '검찰개혁' 이라는 총론 아래 조국 관련 수사를 진행하는 윤석열 검찰을 규탄하는 것 뿐이었던 어제 집회만 가지고는 머릿수가 200만 아니라 500만이 모였다 해도...너희가 바라는 검찰개혁은 결국 조국 수사 하지 말고 윤석열 그만 두라는 거 아니냐는 비웃음을 살 뿐이다.
4.
개인적인 관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일생을 관통하는 두 가지의 한(恨)을 풀기 위해 대통령이 되었다고 본다. 그 첫째는 실향민의 아들로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노무현의 친구이자 변호인으로서 그를 자살로 몰고간 검찰을 개혁하는 것이다. IMF 같은 역대급 재난이 없는한, 위 두 가지 과제만 성공해도 문재인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였던 조국에게 그러한 절실함이 있는지는 조금 의문이다. 일생을 살아오며, 사노맹 사건으로 잠시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던 것 이외에는(그는 일제 때 투옥되었던 김도연 이후 최초의 '빵잽이 출신 법무부 장관'이다. 법무부 장관이 교정행정도 총괄한다는 점에서, 수감생활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경험일 수 있다) 딱히 검사나 검찰권력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은 적이 없었을테니 말이다(사노맹 사건도 검찰보다는 안기부의 작품이었다).
그래서일까. 모든 것을 걸고 맞서야 하는 검찰과의 싸움에 지나치게 안이하게 임하는 것 같아 보인 걸 부정할 수 없다.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100개의 관을 준비해라. 99개의 관은 부패한 관리를 위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내 것이다' 라는 기염을 토했던 주룽지 전 중국총리만큼은 아니더라도, 서울대 교수직이나 딸의 의전원 학생 신분 같은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는 건 좀 아쉬웠다. 그래도 인사청문회 전후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전보다 권력의지는 강해진 것 같고, 피의자 가족으로서 강제수사를 경험하는 고통 같은 것도 몸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2019년 9월 27일 금요일 청와대에서 발표한 대통령의 입장에 따르면 사법절차에 따라 잘잘못이 가려지기 전까지, 즉 기소되더라도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거나 유죄판결이 확정되지 않는한 장관직을 유지시킬 것으로 보인다), 검찰개혁과 관련 가장 시급한 것은 검찰의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는 지나치게 많은 형사처벌 규정들을 대폭 줄여 비범죄화하는 것, 특히 민사상 손해배상이나 과태료 등 행정질서벌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형사처벌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정치적인 갈등을 형사상의 고소 고발로 가져오지 않도록 최대한 절제하는 것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