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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와 위안부, 류석춘을 위한 변명

"성매매를 합법화하자!"

고 주장한다면 2019년 한국의 공론장에서는 매장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 그건 그나마 매장당할 몸값(?)이 있는 셀렙들의 경우고,

나같은 듣보의 주장이라면 그마저 없이 무관심 속에 잊히거나

'그래 이 색마 호색한아 돈주고 창녀들이랑 천년만년 하며 살거라'는 비웃음을 살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대체로 여성들이나 페미니스트들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성폭력을 엄격하게 단죄하려는 사람들과 성매매를 범죄시하는 사람들의 범위는 대체로 중첩되어 있는 것 같다.

법적인 관점에서 성폭력 범죄의 보호법익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다.

이는 그 권리의 주체로서 개인이, 성적인 행위를 할 것인지 여부나 그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한다.

그러므로 성폭력 범죄를 엄벌하자는 입장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두텁게 보장하자는 맥락에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자기결정권의 본질은 대체로 사용, 수익, 처분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성을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성매매를 처벌한다면 성적 자기결정권을 억압하는 것이 아닌가?

'성'을 일종의 수익모델로 접근하려는 입장에 정서적 거부감이 든다면,

성(또는 연애)관계에 경제적인 대가는 조금도 결부되어서는 안되는 것인가?

제도적으로 보호받는 성관계는 실질적으로 결혼밖에 없다고 볼 수 있는데

(그래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남녀는 결혼상대방을 선택할 때에 경제적인 조건을 상당히 중요시 여긴다.

법적인 보호 여부를 제외한다면, 비즈니스 모델로서 결혼(또는 연애)과 성매매는

성적인 상대방이 독점적이냐 불특정 다수에게 제공되느냐의 차이 뿐이다.

(과거 성매매를 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던 연예인 성현아 씨에게 무죄판결이 선고된 것은

성행위에 경제적 대가가 결부되었다 해도 그 상대방이 단 한 명이었기 때문에 성매매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의사결정에 폭력이나 기망이 개입되었다면(가령 강제로 끌려왔다거나 선불금 사기를 당해 매인 몸이 되어 있다면)

자기결정권이 자유롭게 행사되었다고 볼 수 없겠지만

단순히 경제적인 동기가 결부되었을 뿐이라면?

그 결과 불특정 다수의 상대방과 성적관계를 갖기로 스스로 결정하고 상대방(들)과 합의했다면?

이를 처벌하는 게 도리어 성적 자기결정권을 억압하는 것은 아닐까.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직장인들도 돈 때문에 할 수 없이(?) 직장생활을 하지만,

자유의사에 의해 고용계약을 체결한 이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할 도리는 없다.

그래서 명백한 폭력이나 기망이 아니라면, 특히 경제적인 대가가 결부되어 있다면

어디까지가 자발적이고 어디서부터가 자발적이지 않은지 따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공양미 삼백석에 인당수 제물이 되기로 한 심청이의 선택은 과연 자발적(?)이었을까?

하지만 중국 상인들이 공양미 삼백석이라는 반대급부 없이

심청이를 납치해서 제물로 삼았다면 애초에 설화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키스방을 운영했던 지인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카페 또는 술집 같은 단순 유흥업소의 알바인 줄 알고 오는 여성들이 많지만,

일단 높은 시급을 받기로 하고 일하게 된 후엔 조금씩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 지더라는.

이것은 과연 강제인가 자발적인가? 이런 걸 법적으로 단죄하는 것이 무슨 실익이 있는가?

간통죄나 혼인빙자간음죄마저 위헌으로 폐지된 마당에 선량한 성풍속을 보호한다는 얘기는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류석춘 연세대 교수의 '위안부 매춘' 발언을 살펴보도록 하자.

일제 강점기 위안부로 모집된 사람들의 수에 대해 20만~30만이 된다는 얘기가 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위안부 경험을 드러내는 걸 꺼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나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규모 등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인원이었을 거라는 예상은 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인원들을 모집하는데 있어서 엄청나게 많은 양상이 펼쳐졌을 거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강제로 납치하다시피 끌어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젖과 꿀이 흐르는 신세계(?)에 취업시켜준다고 꼬셨을 수도 있겠고,

경제적인 대가가 지급되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관계를 보다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 또는 자발성을 판단하는 것이 학문의 영역일 것이다.

다만 류석춘 교수 입장에서는

현재 한국의 징병제처럼 국가 폭력이 주도적으로 모집에 나섰다는 실증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에서,

성매매 산업의 일반적 양상을 위안부 문제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학문적인 입장에서 비판은 당연히 할 수 있겠지만,

이걸 가지고 교수직 파면을 운운하며 사회적 매장을 시도하거나 형사 처벌까지 검토하는 건 오버가 아닐지.

오히려 자발성에 대한 견해에 따라서는 급진적인 페미니즘과 유사(강제적으로 끌려간 위안부 뿐 아니라 경제적 동기가 결부된 성매매 산업 종사자 또한 피해자다!)해 질 여지마저 있는데?

그저 '위안부 = 좋은 것', '매춘부 = 나쁜 것'인데 '위안부 = 매춘부'라니오? 이럴 수가 있습니까? 라는 식의 감정적인 반응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위안부 문제라는 게 우리끼리 씩씩거린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객관적인 근거와 보편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상대방과 국제 여론을 움직여야 할 일인데,

내부의 이견조차 논리로 설득하기 보다 말문을 막아 버리려는 태도로는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