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야 되는 이벤트에서는 가끔, 과학적 합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변이 일어나곤 한다. 이걸 기적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인의 영혼을 소환하는 게 가장 그럴듯한 해석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꿈보다 해몽이랄까. (좀 삐딱하게 얘기하자면 갈수록 퇴행을 거듭하는 한국정치에서 시체팔이 관장사가 여전히 팔리는 아이템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겠고)
그렇게 놓고보면 개표 내내 뒤지다 마지막 순간에 기적같은 대역전극을 펼친 여영국 의원의 승리야말로, 노회찬의 영혼이 도와준 결과였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치러진 선거중 손꼽히는 접전이었던 2010년 서울시장, 2014년 동작을 재보선 모두 노회찬이 출마했었는데 두 번 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단일화가 이슈가 된 것, 당시의 승리자였던 오세훈과 나경원이 이번 재보선에서 조연으로 참여했다는 점도 특기할만 하다.
두 번의 실패를 딛고 초박빙의 접전에서 여영국 후보를 당선시킨 건 창원 성산 주민들의 힘이기도 하지만, 유서에서조차 나는 여기서 멈추더라도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랐던, 스스로를 던지는 그 순간까지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길 당부했던 노회찬의 마음이 전해진 덕분이 아니었을까.
2008년 총선, 2010년 지선, 2012년 총선에서 모두 사표론에 시달리면서도 진보정당(엄밀히 얘기하면 당시의 진보신당은 현재의 정의당이 아니라 노동당으로 이어졌지만)에 표를 주었던 입장에서, 정의당을 바라보는 심정이 예전같진 않다. 노회찬의 돈 문제도 그렇지만 심상정 아들이 로스쿨 들어갔다는 얘기도 들었고(한때 청렴한 언론인이었던 김의겸이 최근에 주었던 실망만 하겠느냐만은), 나와 같은 서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지도 벌써 오조오억년이다.
그럼에도 그 유사서민의 길조차 걸어가지 못해 과감히 손절하고 친문으로 돌아간 유시민이나 박용진, 아싸리 화끈하게 보수로 투항해 버린 김문수 이재오 등 왕년의 투사들과, 그래도 아직 진보의 깃발을 붙들고 남아 있는 이들을 똑같은 놈들이라며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일반 유권자의 입장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차별화가 안 되는 위성정당이나 여당 지지층을 상대로 단일화와 1+1 구걸로 일관하는 기생정당의 포지션을 버리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들을 지지하는 6~7%의 국민들을 대변하는 정당이 되어 민주당 자유한국당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길 바란다.
이제는 정말 권영길과 노회찬 심상정을 넘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집권을 꿈꿀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 가길 바라며,
압도적인 다수 의석과 여당 대표 경력을 바탕으로 제 멋대로 도정을 펼치던 경남지사 시절의 홍준표를 가장 귀찮게 만들었던(급기야 어지간하면 얼굴을 붉히지 않는 홍준표에게 '쓰레기' 소리까지 들었던) 여영국 의원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p.s: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의 득표율은 51.6%였고, 이에 대해 5.16과 연관시키는 드립이 나왔었다. 2016년 총선에서 정의당의 득표율은 7.23%였고 노회찬이 숨진 날은 7월 23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