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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2018년 4월 26일)

한국인은 대체로 억울하다. 억울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거나 하여 분하고 답답하다'는 것이지만, 대개의 경우 (잘못은 있지만) 자신의 잘못에 비해 과도한 비난이나 처벌을 받는 경우에 더 많이 쓰이는 것 같고, 요즘은 마땅히 누려야 할 처우를 받지 못하는 것까지 포함되는 듯 하다. 

그렇게 놓고 보면 이명박 박근혜는 물론 안희정 이윤택이나 조현민 드루킹까지도 (자신들의 주관적인 관점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전하는 사과의 메시지야 비난의 수위를 낮추려는 립서비스(다테마에)에 불과한 것이고, 본심(혼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법학도의 관점에서 억울함을 분석하자면, 법치국가의 기본 원리인 책임주의와 비례의 원칙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 책임이 아닌 일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자기 몫에 비해 과도한 책임을 지게 된다면 누구라도 억울할 것이기 때문이다.

살피건대, 법에서의 책임은 크게 민사와 형사로 구별되고, 민사상의 책임은 계약에 따른 책임(채무불이행 포함)과 계약 없이 성립하는 책임(불법행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형사상의 책임은 불법행위에 대한 제재로 이뤄지는데, 크게 보자면 형벌(징역, 벌금 등)과 질서벌(과태료 등)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런 구분을 뭉뚱그려 보자면 현대 법학에서의 책임주의는 행위책임이냐 결과책임이냐의 문제로 귀결될텐데, 그 구별도 명확한 것은 아니고 양자가 결합되어 있거나 정도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상해치사와 같은 결과적 가중범의 경우 행위책임과 결과책임을 둘 다 묻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행위책임 없이 결과책임만 존재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형사처벌을 가하지 못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나, 우리 형법은 과실범은 물론 일정한 경우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부작위범까지도 처벌하고 있어 결과책임(결과책임을 행위책임으로 전이시키기 위해 '보증인적 지위'와 '행위정형의 동가치성'이라는 요건을 들고 있긴 하다)의 요소를 강하게 인정하고 있다.

사실 결과책임의 경우 형사책임보다는 민사, 행정적인 차원에서 다뤄야 하는 것이고, 법보다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할텐데 우리 사회는...특히 요즘 들어서는 자극적인 기사를 좇는 언론과 포탈, 그리고 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터넷 여론이 어우러지며 갈수록 결과책임이 강화되어 가는 추세인 것 같다. 똑같은 사안이라도 언론에 보도되면 형량이 더 세진다든지...

한편 이렇게 결과책임이 강화된 데에는 정책실패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현상을 대개 '처벌강화'로 해결하려 했던 정부의 안이한 대처도 한 몫해 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 검찰권이 비대해지고 억울해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생각해 보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도 과거에는 징역 1년 받던 행위에 대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책임을 물어 일벌백계하는 차원에서' 징역 3년을 받게 되었다면 억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억울한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 자칫 사회적인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 결과책임을 강하게 묻는 처벌지상주의나 사법만능주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 궁극적으로는 사회 분위기나 국민들의 의식, 그리고 정부의 태도가 바뀌어야 하겠지만, 우선 사법절차를 개선하여 여론이나 압력에 좌우되지 않는 공정한 판결이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며, 비례의 원칙에 따라 저마다 행위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는 풍토가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분발하여 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억울한 국민이 없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