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기피 목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사라져버린 가수 스티브 유(a.k.a. 유승준). 리즈 시절 그의 헤어스타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1. 짧은 머리
2. 더 짧은 머리
3. 아주 짧은 머리
나의 헤어스타일 또한 단정함과 시원함 정도만을 오갔을 뿐 본질적인 변화를 준 적이 없었다. 물론 두 번 정도 위 3번과 같은 형태의 반삭을 했던 적이 있으나, 지나가는 해프닝이었을 뿐.
스트레이트가 대세이던 시절에도 머리에 한 번 약칠을 한 적이 없었으니 헤어스타일에 관심 자체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근본적으로 머리가 크고(...) 머리숱이 많지 않다는 핸디캡으로 인해 스타일링을 시도하기 쉽지않고, 탈모가 진행되던 무렵에는 길러서 덮는 이상의 신경을 쓰기 어려웠던 측면도 있다.
얼마 전에는 머리가 작아보인다는 꼬드김에 넘어가 다운펌을 시도해보긴 했지만 익숙지 않아서인지 별반 만족을 주지 못한채 지나가고 말았다.
그랬던 내가 생애 처음 거액을 주고 펌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많은 권유에도 불구하고 펌을 한사코 마다했던 이유는 신체 특성상 자칫 축지법 쓰다가 저 세상으로 가버린 장군님(...)처럼 될까 두려워 겂이났던 탓인데, 이대로 탈모가 더 진행되면 (펌을 할 수 있는 머리가 남지 않아) 영영 펌을 해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더 커지면서 큰 맘 먹고 머리를 볶았다.
물론 지갑을 잃어버리는 등 침체기에 빠진 기분전환을 위해(까짓 몇만원 더 잃어버린 셈 치고) 외관의 변화를 주고 싶었던 이유가 더 컸지만^^
아...그런데 토요일의 헤어샵은 역시 ㄷㄷㄷ 요즘 인건비 상승 때문인지 자주 가던 저렴한 샵이 일찍 문을 닫거나 예약 없인 안 받는다는 뻣뻣한 태도를 고수해서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여긴 비싼데도 사람이 엄청 많았다. 디자이너 언니도 토요일보다는 일요일이 좀 한가하다는 식으로 얘기했지만, 간만에 토요일 시간이 난 걸 어쩌겠나.
어쨌건 두피스케일링까지 받고 났더니 원래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길어져 보려고 했던 드라마를 놓치는 불상사가 있긴 했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한 걸 제외하고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어려보이고 숱도 많아보이는데다 머리도 작아보이고 블라블라 ㅎㅎ (돈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자기 최면중)
한편으로 고작 헤어스타일 하나에도 이처럼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만족을 얻는 걸 보면서, 서양에서 쓸모도 없는 잔디밭을 정원이랍시고 관리하는 것이 '우리는 생산활동에 연연하지 않고 정원을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넘쳐 흐른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중세 귀족들의 허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유발 하라리의 지적이 생각나는 것이다.
막대한 대출에 허덕이며 저소득에 신음하는 생계형 노동자가 이런 사치를 부려도 되는 것인가...싶긴 하지만 구치소에 계신 그 분 말씀처럼 기왕 이렇게 된 거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겠다. 물러달라고 할 수도 없는 거니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