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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사용설명서

2016년 이후 새누리 자한 미통당이 계속 선거패배와 비대위구성을 반복하면서 리더십부재에 허덕인 근본적인 이유는, 그 당 주류인 영남 친박계 의원들의 유승민 김무성에 대한 비토정서 때문이다. 어떻게든 두 사람이 당권 잡는걸 막으려다 보니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꾸 비대위를 구성하고, 외부에서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다. 김희옥 인명진 김병준 등등.

그 와중에 어부지리로 대선출마에 당대표까지 한 홍준표도 있지만, 이제는 사람이 없다보니 총선 전에는 꺼려했던 김종인에게까지 손을 내밀게 되었다.

4년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시절의 강렬한 기억 탓에, 김종인 사용법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맘에 안 드는 놈을 정무적 판단이란 이름으로 컷오프시켜 버릴 수 있는 강력한 전권, 본인이 하고 싶을 때까지 보장되는 무제한 임기.

하지만 그 연배의 어르신들이 대개 그러하듯 모양새를 중시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이야기가 언론에 거론되면 불같이 화를 내실 수 있다(내가 OO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허나 그래도 격식을 갖춰 부탁드리면 다시 응하지 않을까? 깉은 이유로 그 분은 선출직보다는 비례대표, 경선보다는 추대, 투표보다는 만장일치를 선호하신다. 이번에도 당헌 개정이 불발되는 바람에 모양새 빠지게 '8월 31일까지만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되셨으니 아마 처음에는 버럭하시겠지만, 당내에서 위기감이 고조되어 반발이 잘 수습된다면 못 이기는 척 추대에 응하시리라 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명문가 자제답게 격식을 중시하는 분이기 때문에 '비상대책위원장' 같이 비정규직 냄새 나는 이름보다는, 간지나게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명패를 만들어 드릴 필요가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발음하기에 따라 '김정일 위원장' 또는 '김정은 위원장'과 혼동될 우려도 있고, 총 10번이나 키보드를 눌러야 하는 '위원장' 보다는 4번만 눌러도 되는 '대표'가 기자들 입장에서도 편할 것이다.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정통성이라는 측면만 빼고 보면 사실 정식 대표보다 딱히 못할 것도 없고 ㅎㅎ

한편 김종인의 최종 목표가 킹이냐 킹메이커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는 거 같은데, 대통령제보다 내각제를 선호하는 그 분의 성향으로 볼 때 개헌이 이뤄진다면 직접 플레이어로 나서겠지만 현행 제도 하에선 본인이 거론한바와 같이 '경제를 잘 아는 70년대생' 김세연을 지지하지 않을까 싶다.

김종인은 김세연의 부친 김진재와는 11대 민정당(1981~1985), 14대 민자당 국회의원(1992~1994)을 함께 했었고, 김세연의 장인 한승수와는 같은 경제학 교수 출신(김종인 서강대, 한승수 서울대)으로 국보위에 참여했다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 7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보사부장관(김종인)과 상공부장관(한승수)으로 내각에서 호흡을 맞춘 인연이 있다.

김세연은 김종인이 선호하는 명문가 자제인데다, 동일고무의 대주주로 돈도 적지 않다. 비교적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이며, 이렇다할 구설수에 오른적도 없어서 내년 부산시장 재보선 등으로 체급만 올리면 보수 리뉴얼의 선봉장이 될 가능성은 적지 않다. 다만, 전국적인 인지도는 그렇다치고 권력의지나 파이터기질이 약해보인다는 점은 보완해야 할 과제인듯.

미래통합당의 현재 모습은 3년 연속 꼴찌 및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실패라는 파국적인 상황에 놓여있던 2014년의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몹시 닮아 있다. 그때 한화 이글스에서 염두에 두고 있던 차기 감독은 무난한 내부 인사였는데, 팬들의 반발에 깜짝 놀란 구단주가 '위기의 이글스를 구할 마지막 희망' 김성근을 감독에 임명한 것이다.

김성근은 6개팀의 감독을 거치며, 약팀을 강팀으로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평을 받았고 특히 마지막으로 감독직을 수행했던 SK 와이번스에서 4년 동안 3번 우승, 1번 준우승의 빛나는 성과를 올렸다.

이에 한화 이글스는 김성근 감독에게 '전권'을 부여하며 팀 혁신을 요청했고 코칭스탭과 FA 선수 영입 등 필요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초반에는 '마리한화'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의 돌풍을 일으켰던 김성근은 시간이 지날수록 시대에 맞지 않는 리더십으로 인해 성과보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끝내 계약기간 도중 경질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김성근을 연상시키는 김종인보다는, 기왕 망한 거 백종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고 전권을 줘서 골목식당 수준으로 리모델링하는 건 어떨까 싶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