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4일
나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2018년 6월 13일에 '2423일'(https://dontreadit.tistory.com/29) 이라는 글을 썼다.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장에 처음 당선된 2011년 10월 26일부터 그날까지 2423일동안 정치권의 변화를 Before & After 형식으로 담아낸 글이다. 그때는 현직이자 3선에 도전하던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리라는 건 예측했지만, 그가 임기 도중에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로부터 1030일이 지난 오늘, 그 자리를 메꾸기 위한 보궐선거가 치러지리라는 것도...
총 12명의 후보가 출마했지만 실질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는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과 국민의힘 오세훈으로 볼 수 있는데, 만일 다수의 여론조사 결과와 같이 오세훈 후보가 당선된다면 그는 2011년 8월 26일 무상급식 투표 무산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지 3514일만에 시장실로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중간의 공백은 좀 길지만) 박원순에 이어 헌정사상 두번째 3선 서울시장(33,34,38대)이자, 박원순의 전임시장이며 후임시장이라는 희귀한 기록을 남기게 되기도 한다. 만일 내년에 치러질 제8회 동시지방선거에서도 당선된다면 쉽게 깨질 수 없는 4선 서울시장이 될 것이고, 그 임기를 무사히 마친다면 박원순이 갖고 있던 기록(3179일)을 가뿐히 뛰어넘어 역대 최장수 서울시장(3855일)에 등극할 수도 있다. 물론 2026년 제9회 동시지방선거에도 도전할 수 있으니 잘하면 5선 서울시장에 5316일 재임이라는 대기록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로 성공한다면 더 큰 꿈을 꾸게 될 가능성이 많아서...
어쨌거나 일단은 돌고돌아 3514일만에 제 발로 박차고 나온 서울시장에 재도전하는 오세훈 후보를 중심으로, 정치판의 Before & After를 살펴보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너무 많은 것들이 달라져 버렸다.
1. 대통령 이명박과 차기가 유력했던 박근혜는 대통령 퇴임 후 모두 감옥에 있다.
2. 노무현 재단 이사장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고 이제 임기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3. 한나라당은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을 거쳐 국민의힘이 되었지만 인적 구성은 그대로이며 이름만 바꾼 것이다. 이하에서는 편의상 '한나라당'이라고만 한다.
4. 민주당은 민주통합당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을 거쳐 더불어민주당이 되었다. 중간에 문재인 세력(시민통합당)이 영입되었고 안철수 세력이 합쳐졌다 갈라졌지만 역시 인적 구성은 큰 차이가 없다. 이하에서는 편의상 '민주당'이라고만 한다.
5.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가 합당했다가,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으로 다시 갈라섰다. 종북 논란에 시달리던 통합진보당은 내란음모 사건에 휩싸이더니 끝내 헌정사상 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을 받고 말았다.
6. 오세훈은 서울시장을 그만 둔 이후 당대표선거 1번, 국회의원선거 2번 낙선 등 뭐하나 되는 일이 없는 10년을 보내야 했다. 보수 몰락의 신호탄을 쐈다는 부정적인 평가 때문에 같은 진영 내부에서조차 X맨 취급을 받기도.
7. 차기 서울시장이 유력했던 안철수는 2번의 대통령선거와 3번의 서울시장선거에서 양보 2번, 동메달 2번, 예선탈락 1번을 하고, 민주당과 합류했다가 독자노선을 걷더니 이제는 한나라당과 합당을 공언하고 있다. 오세훈을 비판하던 그는 한동안 박원순을 지지했으나, 어느 순간 박원순의 시정을 비판하더니 이제는 오세훈과 손을 잡았다.
8. 시민단체 운동을 하던 박원순 변호사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서울시장이 되더니, 민주당에 입당해 총 3선, 3179일동안 재직했다. 그는 최다선 최장수 서울시장이었으나 미투 논란에 휩싸이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9. 최초의 여성 서울시장을 노리던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총 3번의 도전 끝에 처음으로 투표용지에 제 이름을 새기게 되었다. 앞선 2번 모두 박원순에게 고배를 마셨던 그는 이번 선거에선 박원순 때문에 고배를 마실 위기에 있다.
10. 역시 최초의 여성 서울시장을 노리던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재보선 낙선, 국회의원 공천 탈락의 쓴 맛을 본 후 어렵사리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총선에서 낙선하였다. 다시 한번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한 그녀는 이번엔 오세훈에게 밀려 당내 경선에서 패하고 말았다.
11. 한나라당 대표였던 홍준표와 민주당 대표였던 손학규는 당을 떠났다. 손학규는 원외에 있고, 홍준표는 우여곡절 끝에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지역구를 서울에서 대구로 옮겼다.
12. 안철수의 멘토로 알려졌던 김종인 전 의원은, 이후 박근혜에게 영입되어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이 되었다가, 문재인의 제의를 받아들여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역임한 뒤, 돌고돌아 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어 한때 가까웠던 안철수, 박근혜, 문재인, 박영선을 모두 까고 있다.
13. 충남지사를 하며 한때 대권을 꿈꾸던 안희정은 미투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되어 복역중이다. 전남지사 박준영과 광주시장 강운태는 공직선거법위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되었다. 당시 광역지자체장 중에 지금도 현직인 사람은 최문순 강원지사와 이시종 충북지사 뿐이다.
14. 전년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에게 석패했던 한명숙 전 총리는 한때 민주당 대표에 올랐지만, 당시 재판중이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인해 끝내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3위였던 노회찬 전 의원은 어렵사리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드루킹 사건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5. 전년도 서울시장 경선에 출마했던 한나라당 최고위원 원희룡은 광역단체장의 꿈을 이루었다. 서울이 아니라 제주도에서.
16. 국회의장 박희태는 정치자금법 위반과 성추행 사건으로 2번의 유죄판결을 받아 정계에서 불명예 퇴장했으며, 대법원장 양승태는 사법농단 의혹으로 퇴임 후 기소되어 아직까지 재판 중이다.
17.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진행하며 오세훈을 보수의 꼬깔콘이라 조롱하던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TBS 뉴스공장 공장장으로 그 옛날 조선일보가 부럽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중이다. 그는 이번에도 오세훈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며, 그가 당선될 경우 하차 등 프로그램 재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8. 대선 1년을 앞둔 가운데 성남시장 이재명과 대검찰청 중수1과장 윤석열이 여론조사 1,2위를 다투고 있다.
19. 김정일은 죽었다. 하지만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여전히 김정은이다. 몇번의 정상회담으로 획기적인 진전을 맞을 줄 알았던 남북관계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으며, 10년째 천안함 사건의 재평가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판타스틱하지 않은가? 앞으로 3514일 뒤면 2030년 11월 20일인데, (헌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두 번씩의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 세 번의 지방선거를 더 치르고 난 그 때의 모습은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궁금하고 신기하다. 사실은 몇 시간 뒤에 뽑힐 시장이 누가 될지도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오늘 뽑힌 서울시장이 그때까지 계속 서울시장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지방자치단체장의 3연임 금지 규정으로 인해, 법이 바뀌거나 2022, 2026년에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적어도 1번은 쉬어야 가능). 하긴 오세훈이 다시 서울시장에 도전하리라는 것도 3514일 전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ㅎㅎ
세상은 분명히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 시간 속에서 나의 좌표는 어디쯤에 있으며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