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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 개정안, 섣부르고 가혹하다

침묵하는 story teller 2021. 2. 26. 15:00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개정안은 금고 이상의 실형이나 집행유예, 선고유예를 받은 사람이 일정기간 의료인이 될 수 없도록 함으로써, 벌금형을 넘어선 유죄판결을 받은 의사들의 면허를 박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여론은 대체로 다른 전문직들과의 형평성이나, 살인 또는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에게까지 진료를 받는 건 적절치 못하다는 차원에서 찬성하는 입장인 것 같다.

겉으로 내세우는 취지가 잘못된 법은 아마 없을 터, 이 법안의 취지 역시 의사 자격요건을 강화하여 직업윤리와 사회적 책임의식을 제고하고, 의료인의 위법행위를 예방하여 안전한 의료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점에서 일리는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행위 태양이나 죄질을 구체적으로 살피지 않은 채 그저 징역형이기만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면허를 취소한 뒤 그 형기 또는 집행유예 기간이 지나고서도 한참 동안 생업에 복귀하지 말라는 것은 지나치게 섣부르고 가혹하다.

물론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 반문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살인범이 의사가 되어도 괜찮겠느냐고 따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흉악범이라면 사형, 무기 또는 수십년의 장기 징역을 살게 될 텐데, 적어도 징역 사는 기간만큼은 면허가 있어도 의사 노릇을 할 수 없을 테니 과연 그 정도로 호들갑 떨 일인지 의문이다. 정말로 출소 후 사회복귀를 막아야 할 정도의 극악한 범죄자라면 판결로 자격정지를 선고하는 방법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개정안에 따르면 단기의 집행유예나 징역형이 종료된 후에도 일률적으로 동일한 기간(집행유예 2년, 징역 5년) 동안 면허를 박탈하게 되어 형평성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징역 6월을 선고받은 의사는, 출소 후에도 교도소에서 산 기간보다 10배나 긴 5년 동안 생업에 종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집행유예의 디폴트 값인 2년을 선고받은 경우에도 총 4년(2+2년) 간 의료계에서 배제되는데, 집행유예 기간이 수사 재판 다 받고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카운트되는 점을 감안해 보면 실제 불이익은 그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구속 상태로 수사나 재판을 받았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의 검찰과 법원은 사소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들에 집행유예나 징역형을 선고하는데 생각보다 거리낌이 없다. 하루에 수십 건씩의 사건을 처리하는 그네들에겐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사건들일 테니까.

그리고 형법 제51조에 규정된 양형의 조건에는, 피고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만이 규정되어 있을 뿐, 이로 인해 직업이나 경력, 자격증이 단절되는지 여부는 (피고인이 적극 주장하지 않는 한) 깊게 살피지도 않는다.

소위 '민식이법'이나 '윤창호법' 이후 강화된 교통사고, 음주운전 등에 관한 처벌은 그렇다 치고 자가격리 위반만 해도 일벌백계 차원에서 실형을 때리는 나라, 모든 사회적 문제를 형사처벌 강화로 해결하려 드는 사법만능주의 국가에서 의사가 피고인인 형사사건이 널리 알려진다면 엄벌에 처하라는 여론이 들끓을 텐데 과연 판사들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형량을 정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20만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와대 국민청원의 대부분이 'OOO를 엄벌에 처해주십시오' 'XXX를 해당 업계에서 퇴출(영구제명)할 것을 청원합니다'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단독판사조차 2년 내지 3년짜리 징역을 거침없이 선고하는데, 그 과정에 오판이나 억울한 사정이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검찰권의 남용과 사법 농단이 문제였다면, 그 피해를 입은 게 과연 정치인들 뿐이었을까? 또 앞으로는 그러한 일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도 걱정이다.

무엇보다 한 명의 의사를 키워내는데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점을 감안한다면, 죗값을 치르고 난 의사의 면허를 장기간 박탈하는 건 사회적인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면허가 취소되었다고 기능마저 잃어버린 건 아닐진대, 그 의사들이 무슨 일을 하겠는가? 결국 어둠의 병원(?)에서 탈법적으로 의료행위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새로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또한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자격이 취소되면, 기간이 지나는 것 말고는 중간에 의료계에 복귀할 방법도 마땅치가 않다. 사면법에 따른 복권조치가 있기는 하나, 박근혜 정부 이후 통치자들이 사면권을 행사하는데 극도로 소극적이라 큰 실익이 없어 보인다. 사면이 이뤄진다 해도 형 집행 중인 사람을 가석방 등으로 풀어주는 건 몰라도, 이미 형이 종료된 사람에 대해선 나몰라라 하기 일쑤니까. 차라리 물의를 빚은 의사들은 의사협회에서 자체적으로 징계하고, 중간에 다른 사정이 생기면 협회장의 사면조치를 통해 구제하는 방법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유죄판결을 받은 의사들의 의료행위를 제한하는 조치를 법에 규정해야겠다면, 죄종이나 형기에 따라 제한기간에 차이를 두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도 있다. 가령 성폭력이나 강력범죄로 금고 이상의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에만 자격을 제한한다든지, 집행유예, 3년 이하 단기 징역, 3~5년, 5~10년, 10년~30년, 30년 이상 등으로 기준을 세분화하여 제한기간을 달리하는 방식 등. 입법기술상 또 실무상 충분히 가능한 사안을 그저 금고 이상 실형, 집행유예, 선고유예로만 구분하여 일률적으로 자격을 제한하는 건 지나치게 입법편의주의적인 발상이자, 여론의 막연한 불안감에 편승해 의사들을 제 식구 감싸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잠재적 범죄 집단으로 만들려는 것이며, 의사면허를 정부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통제하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공공 의대 설립과 관련된 이런저런 구설수를 비롯해, 이번 정부는 코로나 19 기간 내내 고생했던 의료진의 노고를 어떻게든 후려치고, 토사구팽 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의사들에 대한 대중의 선망과 질투를 이용해, 그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전문직의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분열적 통치방식이 아니길 바란다. 차제에 비슷하게 규정된 다른 전문직에 대한 결격사유도 전반적으로 재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벌금 100만 원이 방패막이가 되어 터무니없이 형량이 낮아진 정치인들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