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 잔혹사
국어사전에 따르면 '미래 未來'란 앞으로 올 때를 말하고, '통합 統合'이란 둘 이상의 조직이나 기구 따위를 하나로 합치는 것을 의미한다.
정당의 이름에 미래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2002년 박근혜가 창당했던 '한국미래연합'이 최초였다. 1998년 정계에 입문한 박근혜는 2017년 홍준표에 의해 출당되기 전까지 줄곧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에 몸담았지만, 단 한번 외도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게 한국미래연합이었다.
이회창 총재의 사당화에 반기를 들고 기세좋게 창당한 한국미래연합이었지만 박근혜 이외의 다른 인사들이 거의 참여하지 않으며 1인정당처럼 운영되었고 창당 한달 후 실시된 2002년 지방선거에서도 광역의원 2명을 배출하는 참패를 겪은 끝에 6개월만에 도로 한나라당으로 흡수되고 말았다.
두번째 미래당은 2007년 대선에 출마한 정근모 후보의 참주인연합이 개편한 미래한국당이었다. 그런데 이 당은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입당하여 당을 접수하는 '정당 M&A' 로 인해 2008년 친박연대로 개편되었다.
당명을 바꾼 덕일까? 친박연대는 지역구로 6석, 정당투표 13.2%로 비례대표 8석을 얻는 등 14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들은 타당 소속 현역 정치인의 이름을 딴 정당이라는 엽기적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또 한번 미래를 팔아 '미래'희망연대로 개칭했으나 정작 이 이름으로는 선거전에 나서지 않았고 결국 원래의 고향인 한나라당으로 복귀하며 간판을 내렸다.
그 와중에 한나라당과의 합당을 반대한 인사들이 미래희망연대를 탈당한뒤 '미래연합'이라는 또 하나의 정당을 설립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 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미래희망연대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틈을 타 친박마케팅으로 기초단체장 1명 및 광역의원 3명, 기초의원 10명을 배출하기도 했으나, 2012년 총선에선 꼴찌에서 2등인 0.09%의 득표율로 강제해산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이처럼 고전을 겪은 후로 한동안 '미래'를 당명으로 쓰는 당은 없을 줄 알았으나, 이번에는 진보쪽에서 2017년 '우리미래'가 출범했다.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도였으나 2018년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우인철 공동대표가 0.23%를 얻는 등 모두 낙선했고, 당명을 아예 '미래당'으로 바꾸고 임한 이번 총선에선 오태양 공동대표가 광진을(고민정과 오세훈이 맞붙은 바로 그 지역구다!)에 출마했다가 3위로 낙선, 4명의 후보를 내세운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0.25%의 득표율로 패배를 면치 못했다.
이 당은 사실 그 자체의 인지도보다는 2018년 '미래당'이라는 당명을 둘러싸고 벌인 구 바른미래당과의 갈등으로 유명했다.
2018년 안철수가 이끌던 국민의당과 유승민이 이끌던 바른정당이, 합당후 '미래당'을 당명으로 쓰려다가 당시 우리미래 측의 반발과 선관위의 유권해석으로 실패했던 것.
우여곡절 끝에 '바른미래당'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통합신당은, 안철수와 유승민이라는 간판급 대선주자, 그리고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제3당이라는 세력에도 불구하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나선 안철수를 비롯한 단체장 후보 전멸, 광역의원 5명 기초의원 21명 당선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듬해 재보선에서조차 3.57% 득표라는 폭망급 성적을 기록한 바른미래당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유승민계의 새로운보수당, 안철수계의 국민의당이 갈라져 나간 대신, 합당에 반발해 새 살림을 차렸던 호남계 민주평화당, 대안신당과 재결합하며 민생당으로 거듭났으나...다들 아다시피 지역구 전멸, 비례대표 2.71% 득표로 단 한 석도 얻지 못하는 굴욕을 겪었다. 이제는 존립마저 위태로운 형편이다.
한편 '통합'이라는 당명도 역사와 전통이 유구한 편인데, 그 시초는 1995년 '통합민주당'이 아닌가 싶다. 당시 김대중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가 갈라져 나가며 쪼그라든 민주당에, 시민단체 출신 재야인사들이 중심이 된 개혁신당이 결합된 세력으로, 흔히 꼬마민주당 시즌2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원내 제3당이었으며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노무현 전 의원이 이 당 소속이기도 했다.
다만 이 당도 선거에선 재미를 못 보았으니 원내교섭단체 유지를 목표로 했던 1996년 총선에서 지역구 9석, 전국구 6석으로 15석에 그치며 설 자리를 잃었고, 이후 여당의 의원 빼가기에 노출되며 더욱 세력이 줄어들었다가, 이듬해 포항북 재보궐선거에서 이기택 총재가 낙선하며 위기에 처했다. 이에 조순 서울시장을 후보로 내세워 대통령선거를 준비했으나, 지지율 부진으로 1997년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바로 그 '한나라당'을 창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통합'을 내세운 민주당계 정당들의 수난사는 200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을 치며, 위기의식을 느낀 집권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이합집산을 벌인데 따른 것이다.
당시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던 김한길계 의원들이 '중도개혁통합신당'을 창당했다가, 당시 열린우리당 분당에 반발해 남아 있던 '민주당'과 합당하며 '중도통합민주당'을 결성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과의 합당에 이견이 생기며 다시 김한길계와 김홍업 등 일부 민주당 인사들이 탈당하며 열린우리당 탈당파,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세력과 결합하여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한 것이다.
참고로 이 당의 원래 이름은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이었는데 너무 길어서 그냥 대통합민주신당이라고 쓰고 로고에만 '미래를 창조하는 대통합민주신당'이라고 박아넣었다. 그리고 약칭으로는 '민주신당'을 쓰려했으나 중도통합민주당이 유사명칭 사용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며 '대통합신당'이라고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약칭이 5글자나 되는데에서 이 당의 복잡한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당의 진정한 코미디는 이제부터 시작인데, 2007년 대통령선거 후보경선이 바로 그것이었다. 당시 대선은 이명박과 박근혜가 1,2위를 다투고 있었기에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딱히 존재감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후보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이 자웅을 겨루게 되었다. 처음에는 노무현 정부 실정론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손학규가 앞서는듯 보였으나, 선거인단 명부와 관련한 소위 '박스떼기' 논란 등 혼탁한 경선 끝에 정동영이 후보가 되었다.
그렇게 후보로 나선 정동영은 이명박의 BBK 관련 의혹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대역전을 노렸으나 결과는 역대 최다득표차(이 기록은 2017년 홍준표가 깼다)였던 532만표 차의 참패. 이름과는 달리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민주당 등 비슷한 성향의 후보들조차 제대로 통합하지 못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고나 할까.
절치부심하던 대통합민주신당은 손학규를 대표로 내세우고, 민주당 잔류파와 통합을 성사시키며 '통합민주당'을 출범시킨다. 이어지는 2008년 총선에서 종로에 손학규, 동작을에 정동영 등 거물급 중진들을 수도권 험지에 출마시키며 반전을 꾀했으나 결과는 이번에도 81석에 그치는 대패였다.
이후 통합민주당은 당명을 '민주당'으로 바꾼 덕인지,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틈타 2010년 지방선거와 몇번의 재보선에서 나쁘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 특히 2011년 '천당 아래 분당'이라던 한나라당의 텃밭 성남 분당에서 손학규 대표가 당선되는 성과를 올리며 2012년 총선에 대한 기대감을 모아갔다.
하지만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안철수의 지지를 등에 업은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게 밀려 후보도 내지 못하는 굴욕을 겪은 뒤, 재야세력 '혁신과 통합'이 주축이 된 시민통합당과 합당하며 '민주통합당'으로 개편된다.
당시 아이폰 등의 스마트폰 모바일 플랫폼이 대세가 되며, 나는 꼼수다로 대표되는 직접 민주주의 열풍이 거세게 불어오던 시기였다. 이에 힘입어 민주통합당은 잃어버린 의회권력을 찾아오겠다며 기세를 올렸지만, 이번에도 새누리당으로 개편된 한나라당에게 과반수를 내주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대선에서도 문재인을 후보로 내며 정권교체를 노렸으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석패. 이후 민주통합당은 다시 '통합'을 떼고 그냥 '민주당'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통합'이라는 이름의 최대 흑역사는 역시 '통합진보당'이 아니었을까.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에서 갈라져나온 새진보통합연대가 우여곡절끝에 통합되며 2012년 1월 출범한 통합진보당은, 분열로 망한다던 진보세력을 간만에 통합한 정당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정희, 심상정, 노회찬, 유시민 등 전국구급 인지도를 지닌 인사들이 간판으로 나선데다,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를 통해 상당수 지역구에서 새누리당 후보와의 1대1 대결구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20석을 얻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민주통합당과의 관악갑 후보단일화 관련 부정경선 시비 및 비례대표 후보 선정 과정의 잡음, NL 출신 인사들의 종북 논란 등으로 삐걱거리더니, 총선에서는 지역구 7석 비례대표 6석(10.3% 득표)으로 총 13석에 그치고 말았다. 물론 이것도 기존 진보정당과 비교하자면 역대 최고의 성적이었지만 문제는 선거 끝나기 무섭게 NL계와 비NL계의 내분으로 비례대표 셀프 제명 등 각종 웃음거리를 양산하더니 끝내 분당이 되고 말았던 것.
하지만 이 또한 이후에 불어닥칠 폭풍에 비하면 정말 작은 해프닝이었다. 비례대표 2번으로 당선된 이석기 의원이 '통합진보당 내란음모사건'에 휘말리며 끝내 당 전체가 헌정 사상 초유의 헌법재판소 위헌정당해산결정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로써 당 재산 전체가 국고에 귀속된 것은 물론, 해당 정당과 유사한 명칭도 사용할 수 없게되어 '통합'이란 이름은 적어도 진보쪽의 당명에서는 흑역사급의 영구결번으로 남게 되었다.
이렇게 '미래'는 보통 친박계 정당, '통합'은 민주당계 정당들이 애용하는 당명이었으나, 희한하게도 선거에만 나가면 참패를 면치 못하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으니, 이번 '미래통합당'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까지 합쳐도 개헌저지선인 103석에 그치는 패배를 당하고 만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명에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나 정체성을 담지 못하고, 그저 '미래'나 '통합' 같은 두루뭉술한 말로 퉁치고 넘어가야 하는 정당들이 선거에 승리하길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갈등을 빚던 여러 세력들을 단순히 선거승리라는 정치공학적인 목적으로 결합한 뒤에 '통합OO당' 'XX통합당'이라고 홍보해봤자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기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아울러 시간이 지나면 오게 마련인 미래를 당명으로 내세우기 보다는, 그 당이 그리는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 보수대통합을 통해 거창하게 내세운 미래의 비전이 '통합'이었으니, 지금도 아니고 미래에나 통합하겠다는 뜻으로밖에 읽히지 않는 것이다.
미래통합당의 당명은 조만간 바뀔 것으로 보인다. 좋은 당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름에 걸맞은 내실을 기해야 오래 가는 정당, 사랑 받는 정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