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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구속

침묵하는 story teller 2019. 2. 7. 15:12

일반적으로 불구속된 피고인은 보통 혐의에 대해 다투어볼 여지가 있거나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 상대적으로 낮은 형량이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신뢰하고 꼬박꼬박 법정에 출석하던 피고인을 선고와 함께 잡아 가둔다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고, 항소/상고 등을 통해 상급심에서 적절한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에도 지장을 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수사단계에서의 구속이 많은 제한을 받고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거꾸로 법정구속이 남발된다면 오히려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던지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려고 하던 근본취지에도 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소 애로사항이 있더라도 형이 확정될때까지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확정판결이 나면 구속 등 형집행 절차를 밟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지난날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던 홍준표 경남지사는 법정구속을 피한 덕분에 2,3심에서 연거푸 무죄를 선고받고 대선후보로까지 발돋움했다. 한명숙 전 총리, 박준영 전 전남지사, 정봉주 전 의원처럼 징역형이 선고되었는데도 불구속 재판을 받다가, 형이 확정되고서야 집행절차를 밟은 사례도 있다.

유명인이라고 봐줘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도망할 염려가 적고 신병확보가 용이한 사람들을 '도망할 우려가 있다'며 구속하는 것은 어폐가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웬만하면 수사 단계에서 구속하고 보던 과거와 달리 불구속으로 재판받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상 법정구속이 늘어나는 것도 어느 정도는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실형선고 = 도망할 염려로 단정지어 버리며, 신변정리는 커녕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조차 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구속하는 것은 법원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궁극적으로는 법을 개정해서 현재 도망할 염려에 한정되다시피한 법정구속 사유를 좀 더 구체화하고, 보석과 상급심 이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불복절차도 개선하며, 서약서 제출을 통해 실형선고 받더라도 확정 전까지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을 수 있도록 하는 대안(이를 어기면 형량을 가중하는 등 페널티를 부과할 수 있도록)을 모색해 볼 필요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더라도 명백히 도망할 염려가 없는 사람들을 가두는 건 재량권 남용이고 법을 위반하는 행위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사법권 독립'이라는 미명 하에 통제받지 않고 방치되어 온 사법권력이 끝내 양승태와 같은 괴물을 만들어낸 것처럼, 조자룡 헌 창 쓰듯 남용되어 오던 법정구속과 관련해서도 적절한 개혁이 필요할 것이다.

p.s : 안태근의 경우 인사발령에 있어서 직권남용의 기준이 되는 재량의 범위, 김경수의 경우 드루킹과의 공모관계 입증(묵시적 청탁에 이어 묵시적 공모도 가능한지?), 안희정의 경우 위력과 간음 사이의 인과관계(대법원 판례상 기준이 되는'항거를 불능케하거나 적어도 현저히 곤란케 할 정도'의 위력이 행사되었는지) 등 법리적으로 다투어 볼 부분이 없지 않다. 그들의 행위가 도덕적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만한 것이라는 점과 형사적으로 처벌 가능한 범위에 있는지는 분명히 다른 것이고, 이 차이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근대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