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2018년 4월 11일)
잠이 많은 편이다. 경험적으로 최상의 컨디션을 얻기 위한 최적의 수면시간은 7시간 정도, 다음날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최소한의 수면시간은 6시간 정도인 것 같다. 어찌저찌하여 5시간 50분밖에 못 잔 다음날이면 몸도 피곤하고 신경도 예민하며 실수도 잦다. 하지만 7시간을 자더라도 새벽 1시 30분 이후에 잠자리에 들면 일어났을 때 썩 개운치가 않다. 아침잠도 많은 편이라 7시 이전에 일어나는 건 개인적으로 딱 질색이다.
그래도 1시간 30분 가까이 소요되는 저주받은 출근길 때문에 7시 15분 ~ 20분 정도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아침식사를 포기할 수 없는데다, 샤워에 몸단장까지 하려니 모닝콜은 6시 15분에 맞춰져 있다. 이전에는 우주소녀의 '비밀이야'를 들었지만 얼마전에 여자친구의 '귀를 기울이면'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걸그룹의 발랄한 노랫소리를 듣는다 해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괴로운 일이다.
6시 15분에 일어나면서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려면 11시 15분에는 잠이 들어야 한다. 퇴근시간도 1시간 30분이 걸리기 때문에 야근이든 술자리든 9시 전후로 마쳐줘야 수면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러하듯 지키지 못하는 날이 많다. 그런 날에도 6시 15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그만큼의 피로는 고스란히 누적된다.
잘때마다 착용하는 샤오미 미밴드는 어젯밤 11시 55분에 잠이 들어 6시 14분에 일어났지만, 중간에 깨서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실제 수면시간은 6시간 1분밖에 되지 않음을 알려 주었다. 그 중 1시간 16분간은 숙면을 취했고 4시간 45분은 렘수면이라 불리는 얕은 수면이었다. 어떻게든 마지노선을 지킨 셈이지만 지난밤의 음주 탓인지 영 피곤하다. 결국 밀린 잠은 주말에 보충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래저래 피곤한 한 주가 될 듯 하다.
이렇게 잠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9개월동안 4일에 한번 밤을 새야 하는 교대근무를 했단 말인가. 심지어 그 때는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을 맞으며 퇴근해서는 순댓국/해장국에 곁들여 소주를 마시거나 애인을 만나 아침부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금강불괴 수준의 몸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한두번쯤은 밤을 새워본 적이 있겠지만, 밤을 새고 나면 피곤한 건 둘째치고 제 정신이 아니게 된다. 전날밤(그래봐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들이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던지...그렇게 전쟁같은 밤일을 마치고 퇴근길 지하철에 오르면 다리가 후들거리며 뽀샤시하게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대조되는 까칠한 내 모습이 더 할 나위 없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밤샘근무 전후로 낮잠을 자야 했던 그 때를 제외하면 낮잠은 좀처럼 자지 않는데, 왜 때문인지 토요일 오후에는 기절한듯 잠이 들 때가 있다. 아마도 1주일 단위로 맞춰진 생체주기에 따라 누적된 피로를 정산하는 방식이 아닌가 싶다.
심하게 피곤한 날이 아니면 코는 골지 않지만, 이는 조금 가는 편이다. 가까이에서 들은 사람들의 평에 따르면 이빨이 부서지지 않을까 두려울 정도라고 한다. 마우스피스를 착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침대는 물론 침실도 혼자 쓰고 있지만, 숙면을 취하기 위해 안대를 하고 잔다. 동쪽으로 창이 나 있어서 아침에(만) 해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2층에 살다보니 창문을 열고 자는 여름날에는 시끄러울 때가 없지 않아서 습관적으로 귀마개도 착용하는데, 요즘은 이어폰을 꽂고 ASMR을 들으며 잠이 드는 경우도 많다. 잠옷은 따로 없지만 안대, 귀마개에 미밴드까지 착용해야 잘 수 있으니 은근 갖춰야 할 것이 많은 셈이다. 그리고 카페인에 약한 편이라, 저녁 6시 이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얘기하면 몹시 까다로운 잠버릇을 가진 사람 같지만, 실제로는 잠자리를 별로 가리지 않는다. 기숙사, 내무반, 고시원, 국립호텔, 선박, 기차, 비행기, 병원 등 다양한 환경에서 크게 어렵지 않게 잠들곤 했다. 자다가 깨는 적은 있어도 물리적 환경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정서적으로 피폐했던 시절에는 불면증을 겪었다. 누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면 생각이 많아지는데, 거의 대부분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었다. 견디다 못해 약국에서 수면유도제(수면제는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하지만 유도제는 그런 것 없이도 살 수 있다)를 사서 복용해 보았다. 약사 선생님이 제일 약한 거라고 해서 시험삼아 먹고 드러누웠는데, 처음 10분 정도는 아무 느낌도 없고 정신이 되려 말똥말똥해지는 것 같아서 약사한테 사기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0분을 넘겼을 무렵 갑자기 내 의지와 관계없이 입이 꾹 다물어지면서 의식이 몽롱해졌다. 약효는 대략 12시간 정도 지속되었던듯. 그러니까 아침에 일어나서도 한참동안을 오락가락하는 상태로 보냈던 셈이다. 그 이후로 수면유도제가 필요할 때는 반일치씩만 먹게 되었다. 심지어 시험 전날에도 약을 먹었다(도핑테스트 도입이 시급합니다). 반면 2주 연속으로 시험을 치던 시절에는 약 없이도 잘 시간이 모자라서(그래도 하루 4시간 40분씩은 잤다) 허덕인 끝에 포도당주사 맞으면서 푹 잤던 기억이 난다.
이제 잘 시간이다. 잘 시간을 줄여가며 잠에 대한 글을 쓸 수는 없으니 이만 자도록 하겠다. 당신의 잠자리가 편안하기를, 그리고 일어났을 때 당신이 다시 만날 일상이 꿈처럼 행복하기를 소망한다. 그럼 잘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