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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철도 5호선(2018년 4월 9일)

침묵하는 story teller 2020. 4. 30. 18:00

서울 도시철도 5호선은 방화역에서 상일동역/마천역까지 총 51개역, 45.2km (상일동역)~47.6km(마천역) 구간을 동서로 연결하는 노선이다. 김포공항, 여의도, 광화문 등 도심을 관통하며 그 밖에도 목동, 마포/공덕, 서대문, 종로3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왕십리 등 주요 지역을 경유한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는 5호선이 개통되고서야 비로소 지하철의 혜택이란 걸 누리게 되었다. 역세권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노선이자 변두리 시티즌의 도심접근권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준 고마운 노선이라고 하겠다. 월드컵 거리응원이나 촛불시위도 5호선을 타고 참여했던 것 같다. 이따금 교보문고를 들를 수 있었던 학창시절의 기억 또한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5호선 역세권을 떠났지만 어쩌다 보니 새로 자리 잡은 동네도 5호선 역에서 크게 멀지 않아서, 환승 등을 감안해 종종 5호선을 탈 때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새로 구한 직장이 5호선 근처라, 출퇴근 각각 1시간씩을 5호선으로 달리는 삶을 살게 되었다.

5호선의 특징은 일단 역이 땅 속 깊숙한 곳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수력발전소 수준의 낙차를 자랑하는 대림역(2,7호선 환승)보다는 덜한 것 같지만, 상당수의 역 플랫폼이 지하 5~6층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아침마다 지하철을 놓치지 않으려면, 튼튼한 무릎을 바탕으로 계단/에스컬레이터를 뛰어내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다만 스텝이 꼬이면 큰 부상을 당할 우려가 있으니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평상시 5호선의 배차간격은 7분 가량, 출퇴근 시간에는 대략 그 두 배의 열차가 투입되므로 3~4분마다 한 대씩의 지하철이 오는 것 같다. 하지만 상일동행과 마천행으로 나누어지는 지선을 이용할 경우 곱하기 2를 해야 한다. 즉 나는 출근시간 지하철 한 대를 놓치면 대략 7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배차가 뜸한 심야시간에는 20분 이상 기다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9호선이나 2호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5호선도 출퇴근시간에는 상당히 혼잡하다. 그래도 몇 개월간 일정한 시간대에 꾸준히 타면서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 가령 신길~여의도에서 앉지 못하면, 광화문~종로3가까지 서서 가야 하는데, 신길이나 여의도는 2-1이나 5-2 부근이 앉기 유리한 반면 광화문/종로3가는 열차 맨 앞이나 맨 뒤가 낫다는 등. 그리고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회사 배지나 과잠 등을 보고 내릴만한 역을 판단해서 그 앞에 서 있는 스킬 등이다. 워낙 장거리를 달리기 때문에 한번 앉으면 백팩을 베개 삼아 고이 잠들 수 있다(물론 자다가 내릴 역을 지나쳐 종점까지 가본 적도 있다). 

오늘도 신기에 가까운 타구판단능력을 바탕으로 신길역에서부터 착석하여 부족한 잠을 청하려는데, 도착역 안내방송에 이어지는 기관사님의 멘트가 예사롭지 않다. 누구나 짜증나는 월요일 출근길을 위로해주며,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와 오후부터 심해진다는 미세먼지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것은 물론, 승객이 많은 역에서는 여유있게 문을 닫도록 하겠으니 조심히 타고 내리시라는 배려까지. 팍팍한 출근길 지하철에서나마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어쩌면 날마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지하철을 타는 우리는, 이름만 모를 뿐이지 의외로 가까운 사이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같은 자리를 놓고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좁은 공간에 서로 부대껴 불쾌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당신의 존재로 인해 이 고단한 시간을 나 혼자만 견뎌내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위안을 얻는다. 외로운 사람들이여 5호선에서 만납시다.